강윤주 기자
우리사회의“어느 쪽 말이 맞는지 판단이 안 설 때 한국일보는 뭐라고 썼는지 일부러 다시 찾아봅니다.”
국회 출입 시절, 취재원들은 제게 종종 이런 말을 건네며 각종 첨예한 현안에 대한 ‘한국일보의 생각’을 물어오곤 했습니다. 우리 사회 그 어느 곳보다 이념 대립이 극심한 여의도 정치권에서 한국일보는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,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신문으로 평가 받고 있었습니다.
이분법으로 갈라진 여론을 가늠하는 일종의 캐스팅보트인 셈이죠. 그래서 한국일보 기자들은 늘 타사 기자보다 두 배로 바쁩니다. 여야가 그럴싸하게 포장한 논리의 숨은 이면을 따져보고, 전문가들도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 얘기만 귀담아 듣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입니다.
정치부에 처음 배치되고 나서 한 선배로부터 “네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가 도둑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취재에 임하라”는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.
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취지였습니다.
사실 저 역시 요새 많은 젊은이들처럼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었습니다.
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나라 걱정까지 할 겨를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죠. 하지만 국회는 우리 생활과 직결되는 법률이 만들어지는 곳입니다.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내 집 마련과 육아 문제는 어떻게 할지, 지금 당면한 제 삶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전선이었습니다. 그 숱한 고민이 모여 누가 더 나은 대한민국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를 선택하는 게 선거입니다. 그 중심에서 치열하게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살피는 일은 그야말로 가슴 뛰는 일이었습니다.
기자를 직업으로 삼게 되는 한‘저녁이 있는 삶’을 누리긴 어렵습니다.
하지만 우리 사회의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순 있습니다.